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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

펭수 좀 내버려 둬라

국감장에 펭수를?… 펭수 건드린 정치권

 

정치권이 EBS 대표 캐릭터 '펭수'를 잘못 건드렸다. 펭수(정확하게는 펭수 연기자)를 국회로 불렀다가 팬들의 반발에 휩싸였다. 캐릭터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정치인들의 관심병이 부른 황당한 사건이다. 펭수의 전 국민적 인기를 새삼 체감한 해프닝이기도 하다.

논란을 자초한 당사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이다. 황보 의원은 10월 국정감사에 '성명 미상의 펭수 캐릭터 연기자'를 참고인으로 신청했다. EBS가 펭수 연기자에게 적정한 임금을 주는지, 저작권료는 어떻게 배분되는지 등을 묻기 위해서다. 펭수 연기자가 '대박'을 터뜨린 성과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지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EBS가 최근 9개월(2019년 11월~2020년 7월) 동안 올린 펭수 매출만 101억3000만원에 달한다.

 

EBS 사장에게 물어보지… '정치적 관심병'인가?

 

취지 자체가 완전히 잘못됐다고 보긴 어렵다. 그동안 일부 팬들이 '펭수가 노동착취 당하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굳이 펭수를 국감장으로 불렀어야 했을까. EBS는 과방위 피감기관이다. EBS 사장은 기관증인으로 국감장에 무조건 나와야 한다. 펭수 문제는 펭수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EBS 사장에게 확인하면 될 일이다. EBS 사장은 펭수와 계약서에 '갑'으로 명시됐을 것이다.

펭수를 국감장으로 부른 '숨은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이목을 끌어 이름을 알리려는 '정치적 관심병'에 걸린 게 아닌지. "(펭수 연기자가) 옷(탈)을 입고 올 것"이라는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의 말에 의심은 짙어진다. 팬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황보 의원이 물러섰다. 황 의원은 "제가 관심받고 싶어서나 펭수를 괴롭히고자 함이 절대 아니다"며 "펭수는 참고인이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침묵보단 나은 해명이다. 다만 앞뒤가 안 맞는다. 관심받고 싶어서가 아니라면 안 나와도 되는 펭수를 왜 불렀을까.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이었을까.

 

 

국감에 펭수 부른다…"정치적 쇼에 우리 펭수 이용하지 말라" - 머니투데이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인기 캐릭터 '펭수'가 다음달 15일 국회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채택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펭수의 팬들을 중심으로 펭수를 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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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 문화' 모르면서 펭수 위해서라고?

 

펭수 팬덤 현상에 대한 몰이해 역시 '자충수'를 불렀다. 펭수는 '남극에서 온 10살 펭귄', 'EBS 연습생' 등 콘셉트로 이뤄진 캐릭터다. 사람이 펭수 탈을 쓰고 연기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그 연기자의 정체를 알고 싶다면 네이버나 구글에 들어가면 된다. 펭수 팬들은 연기자가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공유하는 펭수 문화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펭수는 ○○○'라는 인식이 퍼지면 펭수의 고유한 캐릭터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

펭수가 국감장에 출석하고 세부적인 계약 내용이 공개되면 펭수의 정체가 탄로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까지 EBS는 펭수 연기자가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이번 국감에서 '비공개' 방침이 깨질 수 있다. EBS와 펭수, 펭클럽(펭수 펜) 사이에서 갈등구도가 생길 수도 있다. 국회의 펭수 호출은 펭수 문화와 팬덤 현상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시도다. '참고인은 출석하지 않아도 된다'며 어영부영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과방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은 황보 의원을 향해 "미국 의회에 미키마우스가 출석하는 꼴 아니냐 나중에는 뽀로로, 로보카폴리도 증인 출석 요청할 거냐"라고 비판했다. 조 의원도 펭수 문화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비교 대상이 틀렸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펭수처럼 연기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감에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펭수는 대한민국이 창조한 몇 안 되는 팬덤 캐릭터다. 상품 가치를 넘어 새로운 문화 현상을 촉발한 매개체다. 정치인들이여,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지 못할망정 망치진 말자. 펭수 좀 그냥 내버려 둬라. "나는나는 펭수.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날 사랑해줘"라는 펭수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