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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리뷰>여느 가족과 다른 '어느 가족'의 이야기

어느 가족(2018)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키키 키린, 조 카이리, 사사키 미유


 

#가족, 과연 뭘까

'가족',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어떤 이는 따뜻하고 안정된 느낌을, 또 다른 이는 분노와 슬픔을 떠올린다. '가족은 ○○이다'라는 식의 정의는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가족이 있을 뿐이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타이틀에 드러나듯 한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하츠에 할머니 집에서 모여사는 사람들이다. 3대(로 보이는)가 함께 사는 점을 빼면 우리 익히 알고 있는 가족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이들이 함께 도둑질을 하거나, 서로에게 날선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걸 제외하면.

좁은 집에 모여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들,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불안감은 같은 가족이어서가 아니다. 저마다 사연이 있다. 영화는 이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가족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유리, 변화 그리고 현실

유리는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오사무와 쇼타는 여느 때처럼 도둑질하고 집에 돌아오던 길에서 떨고 있는 유리와 마주친다. 그들은 유리를 좁은 집으로 데려오고, 이를 계기로 조금 이상한 가족의 일상에 변화가 찾아온다. 이 가족의 이상함은 갑자기 나타난 유리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에서 드러난다.

말수가 적은 유리는 점차 함께 사는 이들의 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유리라는 존재 덕분에 하츠에 할머니 집 사람들은 서로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간다. 동시에 언젠가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불안감도 커진다.

결국 유리는 이상한 가족의 정체가 세상에 드러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안한 일상의 평화가 급작스럽게 깨진다. 다만 그들은 안다. 깨질 수밖에 없는 평화였던 걸.


가족은 피로만 연결된다는 사고는 낡고 편협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친밀한 가족은 혈연 중심으로 이뤄진다. 서로 사랑한 엄마와 아빠가 결혼해서 나를 낳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또 그런 가족을 꾸리고. 우리는 이런 가족을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이란 규정은 폭력성을 안고 있다. 규정과 다른 가족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가족에 등장하는 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가 편견이고 폭력이다. 하츠에 할머니 집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가족이라고 외치지 않았다. 그저 조금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공범,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어찌 보면 어느 가족은 공범에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이 그렇게 규정한다. 영화 막판 오사무와 노부요를 심문하는 수사관은 이들이 함께 사는 것 자체를 범죄로 바라본다. 하츠에 할머니 집 사람들 모두 그 집을 벗어났을 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았는데 도대체 뭐가 불법이라는 건가.

그들이 한 집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는 사연, 그 사연에 대해 곱씹는 게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다. 인생이란 가족에서 비롯된 삶을 살다가 가족에게서 떠나가는 과정이다. 저마다 사연이 다를 뿐이다.

집앞 복도에서 홀로 노는 유리. 유리는 어느 가족과 피로 이어진 가족 중 어디에서 행복을 느꼈을까. 함께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 그게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